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저스 혼스비 (문단 편집) == 비판 == 혼스비는 순수 실력과 기록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능력과 인간성이 별개인 사람|야구장 바깥의 인간으로써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 시작한 이후로, 연봉 문제로 떼쓰기[* 사실 구단이 잘못한 부분이 더 크긴 하다만... 그는 '''감독'''이다. 감독이란 사람이 연봉 협상 질질 끄니 팀케미는 뭐...]나 프런트 무시하기, 독단적인 작전에 황소고집에 기자들과는 언제나 최악의 사이였다. 이것 때문에 그토록 화려한 기록, 성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저평가를 받았으며, 명예의 전당 [[최초의 5인]]에서도 밀려난 것이었다.[* 심지어 그 다음해 투표에서도 밀렸다. 당시 로저스 혼스비는 은퇴를 바로 앞둔 시기라 주목받던 시기였는데도 은퇴한 선배들에게 밀렸다. 당시 투표자들이던 기자들 중 상당수가 야구하는 걸 직접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냥 전설로만 불리던 [[사이 영]]조차 뽑힌 해였다. 투수와 야수로 포지션이 다르지만 로저스 혼스비의 야구 선수로의 업적은 사이 영에 확실히 뒤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타이 콥이나 베이브 루스에 동급 비교되는 타격 성적에, 외야수를 하면서 말년에 좌익수나 1루수로 수비부담을 줄여온 좌타자였던 그들과 달리 2루수라는 수비부담이 항상 강하게 있는 포지션을 우타자로 유지했기에, 역대 최고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에게도 부족할게 전혀 없는 선수였다. 수비부담은 와그너가 강하지만, 타격에서 혼스비가 확실히 우위다. 야구 역사상 최고의 우투수가 월터존슨이라면, 최고의 우타자는 명백하게 혼스비다. 간단히 말해 최초의 5인 누구에게도 동급 비교가 가능할만큼 성적이 부족할 게 전혀 없고, 오히려 그 중 크리스티 매튜슨과 비교하면 (투수와 타자 비교임을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압도적 우위다. ] 게다가 뛰어난 성적에 어울리지 않게 팀을 자주 옮길 정도로 동료들과 마찰을 빚었다. 또한 심각한 [[인종차별|인종차별주의자]]였고, 똑같이 거칠기로 유명했던 [[타이 콥]][* 하지만 타이 콥은 인종차별을 한 적이 전혀 없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는 한 백인 노동자나 흑인 노동자들에게도 예의바르게 대했고, 반대로 술을 쳐먹거나 악질적인 장난기가 발동한 상태로 자신을 건드리는(당시 신문 기록상 경기 전 훈련시간에 신발끈 정리하는데 주취자인 관객이 장난으로 떠밀어서 넘어질뻔하거나 진짜 넘어지고 그래서 두들겨 패고 경찰서 간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은 백인이건 흑인이건 많았는데 다 공평하게(?) 폭행했다. 당시 신문과 잡지 등의 남아있는 기록상 백인이라고 덜 때렸거나 흑인이라고 더 때렸던 적이 전혀 없다. ]과는 또 다르게 이 사람은 가족에게조차 폭력적이었으며,[* 사실 이건 콥에게도 어느 정도는 있었으나 콥은 첫째 아들에게만 유독 엄했지 다른 자식, 손자들에겐 유순한 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다른 선수들에게만큼은 거칠지 않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역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트리스 스피커]]와 함께 야구도박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가 사건을 더 파고들지 않고 덮으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하지만 이건 신고한 증인이 갑자기 신고 직후 청문회와 증언을 모두 거부하여 증거가 없던 것이 더 컸다.] 은퇴 후 투자 실패와 알콜중독으로 본인과 가족의 인생을 망쳤다. 그 뿐만 아니라 도박중독으로 선수 은퇴시점에 이미 빚을 엄청나게 지고 있었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타이 콥은 선수시절 경기장 안에서는 거칠긴 했어도 인종차별은 커녕 다른 인종에게 관대[* 신문인터뷰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태도의 발언도 공식적으로 했었다. 콥 가문은 조상들이 조지아 영국계 귀족이었으면서도 인종차별을 반대하다가 다른 백인 지주 귀족들과 다툰 적도 있을 정도의 특별한 집안이었다. 조지아는 미국 건국 13주이자 정통 영국 식민지(현재 미국의 대다수 주는 원래 영국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나 멕시코 땅이었다)로서, 영국인들이 농업 귀족, 흑인들이 노예를 하던 미국 정통보수 지역인데, 콥 가문만 조상들이 매우 진보적 태도를 취한 것.]했으며, 은퇴 후 속옷 사업, 껌 사업, 주식투자 등으로 준재벌[* 타이콥은 혼스비와 달리 흔치않은 상류층 출신의 [[금수저]] 야구 선수로, 대지주 자손이라 농업지역인 조지아 주에서는 귀족이었다. 본가에 하녀랑 집사 같은거 여러명 잔뜩 있는 진짜 그런 환경이었다. 타이 콥 자서전에도 약간 나온다.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대학을 안 가긴 했지만, 야구 안했으면 충분히 쉽게 갈 수 있는 사람이었고, 고등학교때까지 야구 외의 시간에는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즉 경제학적 개념이 머리에 있던 사람이고 친척들도 부자 위주이다 보니, 지주 뿐 아니라 사업가가 꽤 많던 조건이라 은퇴 후 사업도 쉽게 시작한 것. 사실 감독이나 코치 시절에도 주식투자는 이미 하고 있었다.]이 되었을만큼 엄청난 재산을 벌었고, 기부나 자선사업 등의 사회기여를 많이 한데다가 야구 후배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적도 있고, 너무 기대가 높아 엄하게 대했던 아들과의 갈등을 제외하면 가족들에게 늘 자상했으니 참으로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였냐면 오랜 시간이 흘러 [[알버트 푸홀스]]가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해 혼스비 같은 타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저런 미친 기록을 남겼던데다가, 은퇴하는 해에 명예의 전당이 생겨서 기자들 내 인지도가 가장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4번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5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 지금도 가장 저평가받는 동급 레전드 선배 [[에디 콜린스]]조차 4수로는 들어갔다. 역대 내셔널리그 최고의 2루수가 혼스비,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2루수가 콜린스다. 그나마 혼스비가 헌액되던 해는 혼스비 혼자 헌액되어서 나름 주목을 받긴 했다.]되었다. 다만 영구 결번의 경우 혼스비가 카디널스에 재적하던 시기엔 마지막 1년을 제외하고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영구결번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실력과 성격이 한국의 우타자였던 김동주와 비슷한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성적으로는 김동주와는 비교가 안 되긴 한다. 김동주는 3루수나, 소속팀 등 특정 기준 안에서만 최고였던 것이지 전성기조차 KBO 타자 전체 원톱[* 김동주의 신인시절은 [[이승엽]]이 톱을 차지했었고, 그들이 해외로 떠나자 [[이대호]]가 톱을 차지했었기에 본인이 원톱으로 불린 적은 없다.] 도 아니고 트리플 크라운도 아닌데, 혼스비는 전성기 기준 2루수나 우타자라는 조건에 국한되지 않고 MLB 좌타자에 투수들까지 다 합쳐도 명백한 전체 1등 선수였다. 정 KBO 선수로 치자면 성적은 [[이대호]]가 교타 능력을 더 늘린 느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